Part 4 주제별 이야기 391

존재교육과 성품교육의 차이

그러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이야기해야할 때가 왔다. 그렇다면 '존재교육'과 '성품교육'의 차이는 무엇일까?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성품교육'은 기독교신앙이 없어도 할 수 있지만 '존재교육'은 기독교신앙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교육이다. 다른 측면으로 이야기를 해보면 성품교육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좋은 '습관'이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성품연구가 이영숙씨는 성품과 성품교육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개인의 생각, 감정, 행동이 총체적으로 표현되는 성품은, 일반적으로 좋은 성품이라는 긍정적인 개념으로 인식된다. 좋은 성품이란 "갈등과 위기 상황에서 더 좋은 생각, 더 좋은 감정, 더 좋은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어떠한 환경에서도 항상 옳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결단력"이다. 좋은 성품은 ..

3.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 [ 교리 ] - 하나님은 본질의 관점에서 영이시다. 위격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은 성삼위이시다. - 하나님은 유형의 존재나 몸을 소유하거나 물질적 본성을 지닌 분이 아니다. - 하나님에 대해 본질적으로 말할 때, 우리는 그 분을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1) 긍정의 방식으로 2) 부정의 방식으로 - 영이신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우리 눈에 보이실 수가 없다 [ 그리스도 안에 ] - 교회사 전체를 통해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보는 것에 대해 수 많은 방식으로 이야기해왔다. 1)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다. 2) 현현의 방식으로, 자신을 가시적 존재로 만드신다. 하나님 자체를 봤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

2. 하나님은 단순하시다

"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딤전 6:15-16) [ 교리 ] - 하나냄은 부분들의 총합으로 구성되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에게는 이런 저런 요소가 없다. 그보다, 하나님 안에 무엇이 있든 그게 바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절대적이며, 이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안에는 어떤 구별되는 특성도 없다는 뜻이다. 절대자로서 하나님만이 그 분의 영원한 존재에 대한 충분한 이유이시다. - 하나님은 단순히 선하시기만 한 게 아니라 선 자체다. 기술적으로 하나님의 속성들(복수) 같은 것은 없고 다만 ..

1. 하나님은 삼위일체시다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 13:13) [ 교리 ] - 기독교의 하나님, 곧 삼위일체신 분을 말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 하나님에 관해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정체성을 말해야 한다. 하나이신 하나님은 그와 동시에 세 위격으로 계신다. - 무슨 내용이든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말은 성부에게도, 성자에게도, 성령에게도 해당된다. - 삼위일체 교리는 본질의 구별은 없고 그보다 위격의 구별이 있다는 의미이다. - "하나님은 세 위격으로 계신 한 본질" [ 그리스도 안에 ] - 겉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다 삼위 한 분 한 분의 일로 돌려질 수 있지만, 그 중 어떤 것은 그 일이 어떤 일이냐에 따라 삼위 중 특정 위격께..

기독교에서 '탁월함'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탁월함을 만드는 과정은 무엇일까? 바로 예수님의 삶이며, 예수님의 삶을 통하여 드러난 것을 성경에서는 '성령의 열매'라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13:13에서는 3가지를 이야기하며, 믿음 faith πίστις, 소망 hope ἐλπίς 사랑 love ἀγάπη 갈라디아서 5:22-23에서는 9가지를 이야기하며, 사랑 love 희락 joy χαρά 화평 peace εἰρήνη 오래참음 patience μακροθυμία 자비 kindness. χρηστότης 양선 goodness. ἀγαθωσύνη 충성 faithfulness πίστις 온유 gentleness πραΰτης 절제 self-control. ἐγκράτεια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인 존 스토트목사는 갈5:22-23의 말..

"하나님을 아는 지식"

복음을 알아가고.... 성경과 하나님 나라를 알아가고.... 역사와 세계관을 알아가고... 그리고 사람을 알아가고.... 그러한 모든 시간을 지나면서 깨닫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그것이 안되기에 내가 흔들리고... 상황에 흔들리고... 환경에 흔들리고... 감정에 흔들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가야 내가 누군지 알게 되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할지 알게 된다. 모든 것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됨을.... 그래서 마크 존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혼자 공부하고, 하루에 하나씩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물론 이것이 나중에 성경공부 교재가 되겠지만... 우리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

탁월한 과정은 무엇이 만드는가?

탁월함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탁월한 과정'이 '탁월한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탁월한 과정'은 무엇일까? 그것을 '덕'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성품'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의미의 차이가 있다고 말하지만 비슷하게 쓰인다. 플라톤은 '지성'에 초점을 두며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 행동'에 초점을 둔다. 소크라테스는 이성으로 지식을 쌓고 덕을 쌓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성 → 眞知(진지) → 선행(덕) → 행복 이것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지덕복' 합일설이다.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언급한 '덕'을 조금 더 구체화시켜나간 사상가가 바로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지혜, 용기, 절제, 정의라는 4주덕을 말한다. 지혜+ 용기+ 절제 → 정의 지혜와 용기, 절제가 잘 조화되면 ..

탁월함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이다

앞서 이야기하면서 탁월함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라고 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설명하려고 한다. 물론 탁월함은 '결과'를 포함한다. 탁월한 결과가 없는데 탁월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당연히 탁월함은 '결과'로 나타난다. 그런데 탁월함이라는 '결과'에만 초점 맞추면 '과정'이 사라진다.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탁월한 '결과'를 만들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정말 탁월한 결과가 주어진다. 하지만 한 번 탁월한 '결과'가 주어졌다고 해서 또 다시 그 '결과'를 만들 수는 없다. 왜냐하면 중간 과정에 '탁월함'이 없기 때문이다. 탁월한 과정 없이 탁월한 결과를 만들려고 하면 사람들은 부담감에 짓눌려 버린다. 또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고 한다. 탁월함은 결과로 나타나지만, 단순히 결과라고만 할..

'탁월함'이란 무엇일까?

새로운 학교에서 교육의 방향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아이들을 탁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탁월함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왜 탁월함을 드러나게 해야 하느냐? '죄'로 인하여 가려졌기 때문이다. 하나님 주신 탁월함이 인간의 수고와 노력과 열심으로만 살아가게 되면서 죄의 습관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결과는 좋아보일 수 있어도 허무와 공허함에 붙들리게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 바로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탁월함이 드러나게 하려면 결국 2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죄의 습관을 제거해주면 된다.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죄의 습관을 직면하고, 그것을 넘어가고 이겨내도록 돕는 것이 필요..

존재교육이 기존교육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새로운 학교를 시작하면서 질문을 하게 된다. '기존에 학교가 많은데 또 해야하는가?' '이런 교육은 기존교육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많은 교육은 이러한 가치를 가지고 시작한다. 성품을 강조하고, 인격을 강조한다. 착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육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구조를 넘지 못한다. 왜냐하면 교육 역시도 사회구조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좋은 학교는 자본주의의 가치가 기준이 된다. 진학률, 취업률이 중요하다. 결국 이러한 시대 속에서 살아내기 위한 것이 방편이 교육이 되었다. 그러기에 이러한 '존재교육'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존재란 관계를 통해 규정되는데, 인간으로부터 시작하게 되면 결국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존재가 규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외부적..